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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리포트] AI, 그리고 ‘기획된’ 상상력

맞잡은 청년 두 사람의 손에는 땀이 흘러내립니다. 이제 막 운동장을 뛰쳐나온 두 사람은 학교의 문을 닫고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으려 합니다. 한 친구가 외칩니다. “이 길의 끝에 뭐가 있는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지만, 한 번 가보는 거야.”   영화, 드라마 어디선가 본 듯한 이 청춘의 한 장면은, 사실, 그 본질이 기업가정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확실한 현실을 과감히 박차고 일어나는 것이죠.   AI의 발전과정도 그렇습니다. 1950년대 “기계도 인간처럼 생각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 앨런 튜링의 상상력에서 시작된 AI 연구는 컴퓨터 성능의 한계 때문에 1990년대까지 발전할 수가 없었죠. 그런데 갑자기 2009년부터 AI 기술은 미친 듯이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일 때문이라고 합니다.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연구를 하던 앤드류 응 교수는 “AI가 학습을 하는 속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합니다. 그러던 중 게임 개발자들이 CPU가 아니라 GPU를 이용해 병렬적으로 여러 연산들을 수행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흠 저거 우리도 한 번 써 볼까?”     때마침 2007년 엔비디아는 병렬 연산을 개발자들이 쉽게 쓸 수 있도록 하는 소프트웨어 ‘CUDA’를 발표합니다. 이제 앤드류 응 교수는 GPU로 딥러닝을 시키면 신경망 학습 속도가 얼마나 빨라지는지를 측정하고 논문을 발표합니다.     “CPU로 꼬박 몇 주는 걸리던 인공지능 신경망 학습이, GPU를 쓰니까 하루 만에 가능했습니다.” 미친듯한 AI 기술의 성장이 가능했던 계기는 ‘우연’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GPU를 만든 젠슨 황은 이 모든 것들을 계획했었던 것 아닐까요? 천만의 말씀. 그는 2011년 스탠퍼드대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사업계획서도 끝까지 작성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심지어 이런 일화도 소개합니다. “어머니 저는 3D게임을 위한 컴퓨터 칩을 만들 거에요.” (젠슨 황) “그러지 말고 직업을 찾는 게 어떠니.” (어머니)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들었던 그의 머릿속에 ‘GPU가 AI 발전을 위해서는 최고의 도구가 아닐 수 없어. 그러니 나는 위대한 GPU를 만들어서 인공지능 발전에 기여할 거야’라는 아주 구체적인 계획이 과연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요.  지난 17일부터 일주일 동안 열린 엔비디아의 연례행사 GTC에서 엔비디아는 계획들을 흩뿌립니다. 로봇, 양자컴퓨터, 휴머노이드 등등…. 모든 분야의 일들을 다 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무 계획도 없다는 말과 동급입니다. AI의 핵심에 있다는 엔비디아 조차 미래를 계획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AI의 발전이 계획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계획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렇게 놀라운 발명품이 내 앞에 놓여져 있을 수 있는지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발명품도 계획된 것은 없습니다. 마치 우리 머릿속 신경망의 연결처럼 우리 사회와 그 사회 속에 있는 구성원들의 연결 속에 우연히 탄생되는, 신의 창조물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런 우연이 연결될 수 있는 망을 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걸 ‘계획’이 아니라 ‘기획’이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면 미국 국방부가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진 과학기술 기반 스타트업들을 육성하고, 제품을 구매해 주고, 다른 기업들과 연계시켜가며 키우는 활동들을 합니다.     뭐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갖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끝에는 뭐가 있는지 모르지만 보다 나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는 뿌옇지만 활기찬 청춘의 믿음을 갖고 사람들을 모으며 상상력을 ‘기획’해나갑니다.     그 결과 탄생한 것들이 ‘인터넷’, ‘GPS’, ‘마우스’, ‘음성인식기술’, ‘자율주행차’, ‘드론’, ‘탄소섬유’ 등입니다. 이 모든 결과를 미국 국방부가 예상하고 있었을까요?   한국의 정치권에서 엔비디아 같은 회사를 정부가 투자해서 만들고 그 이익을 공유하는 모델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초기 설립자금의 48%를 대고, 부유한 대만 가문들에게 직접 투자도 요청하는 한편, 지속적인 기술혁신을 위해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대만의 TSMC처럼 계획된 기업들을 만들겠다는 방향성도 하나의 성장 모델로 타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동시에 잊지 않았으면 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아무것도 걸지 않는 사람들을 뒤로 한 채, 불확실한 미래를 앞에 둔 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뛰어든 사람들을 모아서 서로 도와주는 망을 만들며 미래를 ‘기획’하는 일입니다. 그런 ‘기획’이 어쩌면 가장 좋은 ‘계획’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신현규 / 글리터컴퍼니 대표실리콘밸리 리포트 상상력 스탠퍼드대학교 학생들 엔비디아 조차 인공지능 신경망

2025-03-25

[실리콘밸리 리포트] AI 시대에 어른으로 산다는 것

불과 30년 전만 해도 자라나는 아이들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어른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밥을 짓는 방법, 옷을 입는 방법, 길을 찾는 방법 등등 세상의 모든 지식들은 어른을 통해 아이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러다가 인터넷이 등장하자 이제는 ‘구글’에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유튜브’가 등장하고, ‘Chat-GPT’가 등장하면서 어른들은 이제 질문을 받는 일이 줄어들었습니다. 아니, 거의 질문을 받지 못합니다. 이제 ‘AI’를 잘 다루는 아이들이 어른보다 더 많이 아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러니 거꾸로 어른이 아이에게 물어야지요. “Chat-GPT 어떻게 쓰는 거니?” 이렇게 말이죠. 이런 현실 속에서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항상 사람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그리고 글을 쓰는 저는 20년간 저널리스트 생활을 해 왔던, 나름, 어른이기 때문에, 어른과 아이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어른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려 했음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답은 상대를 중심으로 할 때 발견되는 경우가 99%입니다. 그러니 어른을 이야기하기 전에 아이들의 상황을 먼저 돌아봅니다.     제가 사는  실리콘밸리에는 훌륭한 대학교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최근 UC버클리, 산호세주립대 등의 컴퓨터공학과를 다니는 친구들이 취업 또는 인턴을 예전처럼 손쉽게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대형 IT 회사들이 더 이상 코딩을 잘하는 친구들을 고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죠. 전해 듣기로는 대형언어모델(LLM)이 가장 많이 학습한 언어가 영어이고, 그 다음으로 많이 학습한 언어는 파이썬(Python)이라는 컴퓨터언어라고 합니다. 인공지능이 빠르게 컴퓨터언어를 잘하는 친구들을 대체해 나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아이들은 이제 인공지능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과거에는 같은 나이 또래의 집단 내에서 경쟁에서 이기면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아이들이, 이제는 인공지능이 갖지 못한 무언가를 할 수 있어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현실이 됐다는 겁니다. 우리 아이들이 처한 상황, 과거보다 훨씬 열악하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어른들이 “나 때는 말이야”라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건 상대방이 처한 입장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이야기이지 않겠습니까. 늘 “나 때는” 지금보다 경쟁이 덜한 환경이었습니다. 도시화 세계화 인터넷화 모바일화 인공지능화 등이 진행되면서 개인의 경쟁상대는 늘어나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더 심해지는 경쟁 속에 있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나 때는” 이라는 말을 통해 존경까지 갈구 또는 강요합니다.   어른이 줄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어른이 더 가진 것이 있다면, 아이들이 살지 못했던 시간일 겁니다. 그 시간 속에 녹아있는 것은 아이들이 맛볼 수 없었던 감정들, 사람들 사이의 네트워크, 또는 축적된 물질 등이 아닐까 싶네요. 물론 물질을 나눠주는 것은 가장 쉬운 일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제가 겪은 뛰어난 어른들과의 경험을 돌아보면 돈은 가장 값싼 나눔의 수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저희 회사는 모두 14명 가량의 투자자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개인투자자들입니다. 성향들은 모두 천차만별입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특별한 어떤 한 투자자 분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자수성가한 사업가인 이분은 아침마다 제게 전화를 합니다. 마치 부모가 아들에게 전화를 하는 것처럼 매일 전화해서 어디를 가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저녁은 먹었는지, 내일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를 물어봅니다. 회사의 세일즈 전략을 공유해 달라면서 본인의 네트워크 속에서 사업적으로 연결될 사람이 있으면 바로 달려가서 저랑 상대방을 이어줍니다. “투자해 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이렇게 까지 해 주실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냥 아낌없이 자신의 시간을 투자해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도와줍니다. 이런 분을 만난 게 참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는 분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AI로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어른들도 줄 수 있습니다. 여기엔 많은 게 있겠지만 오늘 제가 하나 강조하고 싶은 건 바로 ‘함께 한다’는 느낌입니다. 거친 경쟁의 파도 속에서도 혼자 내팽개쳐져 있지 않다는 느낌. 아무리 힘들어도 같이 웃어줄 수 있는 어른. 일본의 만화가 ‘야마다 세이지’가 쓴 책 〈어른의 의무〉에는 이런 말이 등장합니다.   “무엇보다 젊은 사람들이 실은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발 존경할 수 있게 해달라고, ‘당신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웃음과 긍정을 잃지 않는 미소 띤 어른의 모습. 어쩌면 우리 아이들은 그런 어른을 닮아서 웃고 싶은 것은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신현규 / 글리터컴퍼니 대표실리콘밸리 리포트 어른 모바일화 인공지능화 상황 과거 저널리스트 생활

2025-02-23

[실리콘밸리 리포트] 인공지능이라는 자전거

인간의 모든 문명을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이해해 봅시다. 뜬금없는 소리란 걸 압니다. 근데 일단 (막무가내로) 한 번 그렇다 치고 생각해 봅시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자전거가 발명된 이유는 인간의 심장으로 가장 먼 거리를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도구의 개발, 즉, 먼 거리를 가는 시간을 단축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불로 조리하려면 10분 이상 걸릴 것을 1~2분 만에 가능하게 해 준 ‘마이크로웨이브’, 서너 시간은 족히 걸릴 손빨래를 1시간 만에 줄여 준 ‘세탁기’ 등등…. 문명의 발명 대부분이 ‘시간’을 줄여준 것들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요즘 유행하는 AI도 마찬가지입니다. AI가 글도 써 주고, 코딩도 하고, PT도 만들고, 영상도 제작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 6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기조연설 하는 것을 들으니 AI는 이제 공장에 들어가서 로봇을 움직여 물건을 제조하는 시간도 줄여줄 것 같습니다. (여담이지만 값싼 노동력으로 장사하던 중국은 이제 큰 일 났습니다.) 기대되네요. 앞으로 우리에겐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아돌까요.   ‘모든 사람에게 가장 이븐(even)하게 분배된 자산은 시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문명이 우리에게 줄여 준 시간으로 우리는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사색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나거나.   사실 문명의 가장 멋진 발명품 중 하나인 ‘신문’과 ‘칼럼’도 시간을 줄여준 도구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신문을 통해 세상의 소식과 지식을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고, ‘칼럼’을 통해 ‘생각의 리더들(Thought Leader)’이 가진 현실인식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부족하지만 그런 멋진 일을 할 수 있게 해 준 미주 중앙일보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유튜브와 숏츠로 대다수 ‘생각의 리더’들이 서식지를 옮겨간 지금, 신문에서 보이는 칼럼은 재탄생되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칼럼이나 뉴스가 독자 여러분에게 줄여줄 수 있는 시간은 무엇일까요?   20년간 언론에 몸담았던 제가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에 도전한 배경입니다. 뉴스나 칼럼을 AI의 도움으로 웹툰 형태로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웹툰 위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덧칠해 볼 수 있게 함으로써,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이 가진 생각의 근육을 키울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글이 웹툰 형태로 여러분에게 제시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고 이 글 위에 여러분이 각자 생각을 낙서처럼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그 결과 이 칼럼을 읽은 여러분의 머릿속에 제가 쓰는 것과 다른 생각이 언이븐(uneven)하게 싹터서 또 다른 생각을 낳고, 또 다른 생각을 낳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적어도 아무 생각이 없는 삶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요.   문명이 발전하면서 길어진 시간이 하나 있습니다. 다른 대부분의 작업들에 걸리는 시간은 짧아졌지만, 사색을 통해 깊은 생각을 도출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졌습니다.     남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책을 쓰는 작업에는 며칠 정도밖에 걸리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생각을 담은 책을 쓰려면 과거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평균적인 인간의 집중가능 시간은 금붕어의 그것보다 짧은 8초(2015년 마이크로소프트 발표)라고 합니다.   문명은 우리에게 시간을 선물로 줬습니다. 우리는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합니다. 마치 여백이 많이 남은 신문지처럼,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빈 노트처럼, 비워진 시간들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빈 공간을 오로지 내 것으로 채울 수 있는 방법은, 그 공간에 나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AI 를 이용한 재미있는 만화 이미지 콘텐츠 위에 나의 상상력과 판단력을 더해서 낙서를 해나가는 공간을 저희는 꿈꿉니다. 그를 통해 여러분의 글 쓰는 능력과 그림 그리는 능력, 그리고 궁극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발전해 나가길 꿈꿉니다.   저희의 이런 노력만이 정답은 아닐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AI라는 새로운 ‘자전거’가 등장한 지금 이 시대에 우리는 더 멋진 일들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신현규 / 글리터컴퍼니 대표실리콘밸리 리포트 인공지능 자전거 집중가능 시간 웹툰 형태 사실 문명

2025-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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